정치

교수님의 석궁 테러 : 1995학년도 성균관대학교 본고사

대전티모시샬라메 2024. 11. 16. 18:01

이번 글에서는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의 전개와 이의 원인이 된 성균관대학교에서 출제한 어마무시한 수학 문제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전 교수 김명호는 1995년 1월 수학 본고사의 채점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흔히 '본고사'로 불리는 성균관대학교의 1995학년도 대학별고사 문제지 중 수학 II 과목은 다음과 같았다. 이 중 출제 오류가 있었던 문제는 마지막 문항인 7번이다.

김 전 교수는 채점을 하다가 7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했다. 7번 문제는 "영벡터가 아닌 세 벡터 $\vec{a}$, $\vec{b}$, $\vec{c}$ 가 모든 실수 $x$, $y$, $z$ 에 대하여 $$ \left| x \, \vec{a} + y \, \vec{b} + z \, \vec{c} \right| \ge \left| x \, \vec{a} \right| + \left| y \, \vec{b} \right| $$ 을 만족할 때, $\vec{a}  \, \perp  \, \vec{b}$, $\vec{b}  \, \perp  \, \vec{c}$, $\vec{c}  \, \perp  \, \vec{a}$ 임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김 전 교수는 "전제 조건에 나온 부등식이 모든 실수 $x$, $y$, $z$에 대해 항상 성립한다고 가정하고 문제를 풀면 $\vec a$, $\vec b$, $\vec c$ 은 모두 영벡터일 수 밖에 없다"며 문제 자체의 오류를 지적했고, 이를 총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김 전 교수의 주장과 비슷하게, 전제 조건에 나온 부등식을 풀면 $\vec a$ 또는 $\vec b$는 영벡터이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풀이는 아래에 있음. 그러나, 7번 문제는 "영벡터가 아닌 세 벡터 $\vec{a}$, $\vec{b}$, $\vec{c}$ ~" 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출제상 오류로 증명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 개의 벡터가 모두 영벡터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vec b$ 와 $\vec c$ 만 영벡터여도 충분하다. 위에서 김 전 교수가 세 개의 벡터가 모두 영벡터가 되어버린다고 했는데, 이는 기자의 실수가 아닐까 싶다.)

이쯤에서 문제 오류가 아니지 않냐는 학생이 있다면 칭찬해주겠다. 나도 처음에는 '전제가 항상 거짓이므로 결론에 무관하게 명제가 참'인 공허참(Vacuous Truth)의 논리에 의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햇갈렸었다.

실제로 성균관대학교 측에서는 공허참 논리의 '모범답안'을 내놓으며 김 전 교수의 출제오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모범답안은 "해당 문제를 '영벡터가 아닌 세 벡터 $\vec a$, $\vec b$, $\vec c$ 와 모든 실수 $x$, $y$, $z$ 에 대해 조건명제 $p$ 이면 조건명제 $q$ '라는 방식으로 바꿔 쓰도록 하자. 그런데 전제조건 $p$ 을 모든 실수 $x$, $y$, $z$ 에 대해 만족하는 영벡터가 아닌 벡터 $a$, $b$, $c$ 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조건명제 $p$ 의 진리집합은 공집합이다. 이는 조건명제 $q$ 의 진리집합의 부분집합이다. 따라서 '$p\rightarrow q$'라는 조건명제는 참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성균관대학교가 공개한 모범답안의 원본을 살펴보자.

얼뜻 보면 대학의 주장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공허참의 논리가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영벡터가 아닌 세 벡터 $\vec a$, $\vec b$, $\vec c$ 와 모든 실수 $x$, $y$, $z$ 에 대해 조건명제 $p$ 이면 조건명제 $q$" 라는 방식으로 바꾸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p$ 가 참일 때, $q$ 임을 증명하시오." 이지, "명제 $p \rightarrow q$ 의 참 거짓을 증명하시오" 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의 모범답안이 옳기 위해서는 문제가 이렇게 출제되어야 했었다 : 영벡터가 아닌 세 벡터 $\vec{a}$, $\vec{b}$, $\vec{c}$ 가 모든 실수 $x$, $y$, $z$ 에 대하여 $ \left| x \, \vec{a} + y \, \vec{b} + z \, \vec{c} \right| \ge \left| x \, \vec{a} \right| + \left| y \, \vec{b} \right| $ 이 성립하면 $\vec{a}  \, \perp  \, \vec{b}$, $\vec{b}  \, \perp  \, \vec{c}$, $\vec{c}  \, \perp  \, \vec{a}$ 임을 증명하라.

내 생각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모범답안의 (i)을 의도로 하고 출제를 하였으나, (ii)를 생각하지 못하는 바람에 출제 오류가 되어 버린 듯 하다. 뒤늦게 공허참을 이용하여 출제 오류를 비켜가고 싶었지만, 김 전 교수의 의견에는 수많은 수학자들이 지지를 보내며 사건은 심각해져 갔다.

이제부터 수학 이야기는 끝이고, 김 전 교수가 어쩌다가 석궁 테러를 하게 되어버렸는지까지의 사건들을 살펴보자. 수학만 좋아하는 INTP들에게는 재미 없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상당히 재미있는 썰들이니 읽어보는 것을 권장함.

성균관대학교는 '모범답안'을 제시한 이후로도 출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김 전 교수의 수학은 명백히 틀리지 않았었다. 수많은 국내외 수학자들, 심지어 그 대단한 마이클 아티야 명예교수도 "한국 과학의 국제적 입지와 평판을 위한다면 김 교수 사건을 조사하고 김 교수에게 합당한 지지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서신을 보낼 정도였다. 세계적 귄위의 과학 잡지 '사이언스 Science'에 'The High Cosf of a Right Answer'이라는 편지를 통해 김 전 교수를 옹호했다.

김 전 교수는 수학적으로 의미있고 중요한 지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장을 제기한 후 승진에서 탈락하고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1996년 2월에는 재임용에서 제외되었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 전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측에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심과 2심에서 연달아 패소하였다. 당시 학교 측은 학교에 해를 끼치는 행위와 연구 소홀 등을 재임용 탈락 사유로 들었으나, 김 전 교수는 "95년 본고사 문제 논란 이전에는 차기 학과장으로 추천 받을 정도로 학교에서 대접을 받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제 오류를 지적한 '괘씸죄'에 의한 보복"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 전 교수는 97년 5월 항소심에서도 결국 패소했다. 법원의 판단은 "심사 과정에서 원고가 주장하는 부당한 사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학교 측의 부교수 임용 여부는 학교 측의 전적인 자유재량"이라며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에서 패소한 김 전 교수는 그 이후 한국을 떠나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돈도 못 버는 아주 불쌍한 연구 교수 생활을 했으나, 2005년 귀국해 다시 소송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결국 다시 패소를 했고, 담당 판사에게 테러를 가하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2007년 1월 15일 오후 6시 30분 패소 판결을 알게 된 김 전 교수는 석궁과 석궁 화살, 회칼, 노끈을 가지고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박홍우 판사의 집을 찾아갔다. 판사는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 씨는 석궁을 들이대며 판사를 습격하였다. 김 전 교수가 쏜 석궁에 맞은 판사는 김씨와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김 씨는 판사의 몸 위에 타고 올라 죽여 버린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판사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아파트 경비원과 박홍우 판사의 운전기사가 달려와서 다시 석궁을 장전하려 했던 김 전 교수를 제압했다. 박 판사는 경비원에게 신고하라고 하면서 아파트에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10분 쯤 뒤에 내려와서 119 구조대의 구급차를 타고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붙잡혀 있던 김 전 교수는 경찰에 넘겨졌다.

김 전 교수는 이 사건으로 인한 상해죄와 그 동안 1인 시위를 거치면서 여러 판사들에게 실명으로 퍼부은 욕설과 비난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어 결국 4년 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당시, 이 형이 합당하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김 전 교수가 이렇게 많은 형을 받은 주된 이유는 '석궁을 의도적으로 판사에게 발사'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 전 교수는 끝까지 의도적으로 석궁을 발사한 것이 아니라, 협박 목적으로 가져간 석궁이 실랑이를 벌이다 일어난 몸싸움 도중 자신도 모르게 발사된 것이라 주장했다.

심지어 판사가 석궁을 맞을 당시 입고 있었던 옷에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는 등 상식적으로 수상해보이는 일들이 많았다. 이를 명확히 밝히기 위하여 변호사 측에서 혈흔 검사와 유전자 검사 등의 과학 수사를 진행하였지만, 하나도 허락되지 않았다. 등등 이 재판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가십거리였다.  더욱 궁금하면 나무위키로 가라.